충동적인 결정

일을 그만두었다. 원래도 옮기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행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일들이 겹치자 어찌된 일인지 격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리고 아무계획없이 그날로 그만두었다. 난 지쳤다. 지쳤으니까 좀 쉬는 것도 괜찮아. '대책은 나중에 생각하자'라는 마음도 있긴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른 일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왜 편히 쉬지도 못하는 걸까. 나는. 자꾸 채용공고를 클릭하고 있다. 사실은 그만둔 날도 퇴근하면서 면접을 한군데 봤지만 역시나 급하게 구하려니 근무여건이 엉망이었다. 웃는 얼굴로 날 잡아먹으려는 능구렁이 아줌마들이 득시글했다. 아무리 급해도 쉬어가자라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졸업하고 바로 스물네살에 일을 시작하고 나서 마음편히 쉬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직을 하느라 3-4일 쉬었던걸 빼면. 남들은 내 조건이면 얼마나 삶의 질을 추구하면서 살까. 굳이 나처럼 성실한 마음으로 스스로 개념있게 일하자고 생각해봤자 자기인생 제멋대로 살겠다는데 뭐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껏 열정적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뭐.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잃는것도 많겠지만 인생은 어차피 단 한번 사는것이니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고는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가망성이 희박한(전혀 없지는 않은) 모험을 하면서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그렇게 살아보는것이 나쁘진 않아보인다. 인생이란 나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즐거워 해야하는 것이니까. 어쨌건 나는 당당히 쉬어도 된다. 안식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이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라 불안하다. 쉬면서 모험계획도 구상하고 여유롭게 생각해도 되는데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나보다. 여하튼 나는 벌써 내일 면접약속을 하나 잡아놓았고 또 금방 일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 결정하기가 참 어렵다. 생각이라는게 정리가 될까? 나는 계획을 세우고 고집스럽게 이뤄나가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자기절제와 확신이 있다면 무슨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맨처음부터 꼬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너무 어렵다. 나는 늘 주어진 길을 따라가기만 했는데 학업이 다 끝나고 내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순간이 오자 나는 움츠러들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다.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누구나 겪는 어른이 되는 과정을 나는 너무 늦게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나는 월급을 받기위해 일을 한다. 단지 그 이유다. 별다를게 없다. 꿈도 없고 야망도 없이 내 마음들은 너무 늙어버렸다. 돈을 더 많이 벌고싶다거나 더 높은자리를 꿈꾼다거나 더 편한 생활을 바라지도 않고 그냥 이정도면 편안하고 이정도면 괜찮치 싶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모든게 정말로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란 이렇게 되는데로 사는것이 아니지 않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살면서 정말로 원했던 모든일들은 나혼자의 의지나 힘으로 이뤄지는게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면 뭐가되었든 완벽하게 내 뜻대로 되는것은 없다. 나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설득도 못한다. 사람은 그냥 자신의 가치관대로 움직이고 그것은 스스로의 결정이기때문에 내뜻대로 변할 수가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나는 너무 쉽게 만족하는 사람인가보다. 내 스스로에 대해 그럭저럭 만족한다. 스스로를 채찍질 할만큼 절망적인 감상에 오래 젖지도 못한다. 내 자의식은 그냥 늘 굳건하게 존재한다. 이게 건강한건지 멍청한건지는 모르겠다만. 억울해서 죽을고생과 각오로 살아본 사람이 웅크린 반동으로 차고나간다. 무시도 당해보고 욕심만큼 못가져본 사람들이. 내 인생도 평탄하기만 했다라고는 말을 못하지만 나는 안좋은일이 생겨도 적어도 스스로 한을 품는 타입은 아니다. 그냥 털어내버린다. 내 감정을 스스로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솔직해지자. 이번 기회에 나의 자아와 터놓고 이야기나 해볼까. 하지만 스스로의 자아와 대화할 정도로 내가 분열되어있지는 않다. 정상인도 정신분석을 할수있고 일반인도 한두가지 트라우마는 다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선수가 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지옥을 지나가야 천국도 나오는것이라고. 사년간의 인고의 훈련기간을 두고 한 말이겠지만 인생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나에게는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지옥을 지나가야 천국도 나온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